그러니까 내가 이 루즈하고 명작도 아니고 흥행도 망한 영화가 너무 취향이라 극장 3회차를 돌고 각종굿즈사운드트랙까지 바리바리 샀다는게 사실이라고? 그래 사실이야
이걸 어디 써둘까... 하다가 "그러고보면 이 블로그는 원래 '이런 이야기' 들을 쓰려고 팠는데..." 를 깨달아서 여기에 주절주절 써본다.
사실 나는 개봉 당시의 조커1을 본 적이 없다.. 개봉 당시 영화 외적인 이슈가 너무 피로했기에 일부러 관심 안두고 멀리했었는데...
조커 2에 대해 '감독이 이 악물고 인셀털기춤 하는 영화' 뭐 이런 감상들이 하도 돌아다니길래 궁금해서. 조커2 감상 전날 저녁에 네이버로 조커1 대여해서 후딱 보고 바로 조커2를 보러 갔었다.
1편 본 직후의 감상은 대충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 영화인데... 꽤 마음에 드는데?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외부적 평가가 밈적이고 (양측 다 혐오적 맥락을 가진 채) 양분되고 있는 현실은 진지하게 현실의 내가 슬프다... 하지만 그 사실조차 어떻게 보면 영화의 연장선 같기도 하다.' 였음.
조커1에 대해서도 쓰려면 더 쓸 말이 많겠지만... 2편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자연히 나오게 될 것 같아서 대충 중략.
그렇게 2편을 보고 난 직후의 감상은 '와... 취향...' 이었고, 마지막 카타르시스가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엔딩롤을 끝까지 다 봤다.
비판적인 뇌로는 '루즈한 구간이 있다. 이런이런 파트들은 잘라도 됐다.' 라 생각하면서도.... 관객으로서의 나는 사실 한 번도 지루하다고 생각한 적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풀로 몰입했다(...ㅋㅋ)
그리고 뭐 익명의 인터넷이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이건 청자인 나 역시 갖고 있는 당사자성의 연유가... 분명 있는 것 같다.............. 아니 그 이유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 같다...
1편이 좋냐 2편이 좋냐 물으면... 영화의 완성도로서는 분명히 1편이 훨씬 '더 좋고' '잘생기고' '깔끔하게' 작성되었다고 생각하지만
1편은 코미디의 왕/택시드라이버의 오마주성이 매우 강한 작품인지라...
'감독 본인의 오리지널리티' 라는 지점에서 난 2편이 더 좋다. ( 후술하겠으나 '쇼' 라는 네러티브의 완결 역시 정말 마음에 들었으므로)
1편에서 찰리 채플린과 모던 타임즈가 대놓고 직접 등장한다. 다음 유명한 문장도 아주 대놓고 등장한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촬영 기법을 이용한 언어유희이기도 하다. close-up과 long-shot. 이 부분 역시 영화 조커에 적용된다.
그리고 나는 이 문장 자체가 시리즈 전체의 핵심이 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1편에서, 조커가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 등장해 생방송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부터의 미장센이 아주 아름답고, 희극적이고, '롱 샷' 으로 그려지는 것은 몹시 의도적이다. (이 부분이 미화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공감한다. 진짜로 '아름답게' 그리기 위해 연출한 것이 맞으니까. 다만 나는 영화 전체의 서사속에선 그렇게 연출해야만 했다... 고 해석하는 쪽이고.)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 이니까. 아서 플렉이 바라던 것은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 순간부터 아서 플렉은 아주 유명한 코미디언의 꿈을 이룬 것이다.
그 순간부터 아서의 삶은 무대가 되었고, 쇼가 된 것이다.
그 순간부터 삶이 진정 '멀리서 보면 희극이자,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인 것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는 드디어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환호받는 쇼의 주인공으로 변한 것이다. "관객에게 아름답고 환호적인 모습으로 보여주었" 으니까!! 그리고 해당 장면이 희극으로 성립되었음은, "가까이서 보면 개인의 비극이 된 것" 과도 완전히 동일하다.
나는 1편을 이렇게 해석했었기 때문에....(특별히 외부 리뷰나 해석을 찾아본 적 없다. 진짜 바로 자고 아침에 일어났어야했었음) 다음날 아침 바로 본 2편에서 "정말 일관적인 네러티브를 사용하고 있구나" 라 느꼈다.
사실 뭐 인셀털기춤이니 감독의 생각이 바뀌었니... 하는 평가는 전혀 공감을 못했다... 아닌데? 아니 감독은 1편이랑 2편 완전히 동일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쇼" 라는 주제 아래서 진행되고있는데?? 당연히 2의 결말도 비극으로 보이는 희극으로 끝나야 하는 거 아냐?? 뭐 그런감상이었으므로... (물론 공감은 못하지만... 어느정도의 이해는 한다. 조커는 없어... 라는 대사라든가. 난 이거 오역에 가깝다 보지만.)
아니 '쇼(극)' 라는 네러티브를 차용하고 있는 건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괄적이지 않은가..
오프닝과 엔딩의 시퀸스, 연출 내내 반복되는 2색의 조명(이것은 무대조명의 연출과 동일하다), 초반에 리와 아서가 보는 극중극 영화에서 대놓고 언급되는 '정극이든 뮤지컬이든 상관 없어, 계단에서 춤을 추는 주인공, 바지가 벗겨진 광대', 모든 법정 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을 비추는 텔레비전' (텔레비전 자체는 감옥씬에서도 등장하고... 아니 초반 상담씬이나 인터뷰 씬 등에서도 계속계속 등장하지 않는가. 그래서 난 2편의 여러 씬 자체가 일종의 극중극으로도 성립되고 있다 해석한다)
그리고 아서가 조커의 역을 벗기로 결심하고 법정이 날아간 이후부터, 망가진 텔레비전이 장면에 잡히고, 변화한 조명연출이 사용되고 있음은...
제일 결정적으로, 아서가 칼에 찔리는 씬에서 웃음 트랙(개그프로 보면 나오는 관객웃음소리 삽입 그거)이 재생되고,
죽은 아서의 시선이 카메라=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영상연출에서 이것은 금기다. 하여 의도적인 요소인 것이다.)이 '클로즈 업(가까이서 보면 비극)' 으로 보여졌다가, 카메라가 점차 멀어지며 '롱 샷(멀리서 보면 희극)' 이 되고, 1편에서도 등장했던 That's Life가 엔딩곡으로 경쾌하게 흐르는 것은....... (참고로 나는 영화 전체에서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세번 봤는데 세 번 볼 때마다 순수하게 너무 작품적으로 좋아서 웃고 엔딩롤을 기다리게되더라...)
근데 번역은 좀 아쉽긴 했다.
작중 너/아서/조커라는 2인칭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데... 자막에선 이걸 아예 빼버리거나, 원본에 없는 2인칭을 임의로 삽입해버리는게 굉장히 잦았기에... 이걸 깨닫고부터는 2인칭이 언급되는 부분들은 자막 말고 걍 귀로 들었다.
특히 마지막 리와 아서의 계단 대화씬에서 "조커는 없어" 가... 다른 맥락으로 이해되도록 너무 플랫하게 번역된게 아닌가...
대충 나의 기억으로 적은거라 모든 대사가 동일하진 않겠지만... 좀 더 맥락 확실한 대화로 적자면
-나야, 아서, 머레이 프랭클린을 죽인 사람
-아니, 네가 아냐
여기에 조커는 없어, 네가 말했잖아 ('조커는 없어' 라 플랫하게 번역된 부분. 이 대사는 법정씬에서 아서가 조커이길 포기하는 장면의 대사와 완전히 동일하다. 이것이 '세상에 조커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의 의미로 읽히면 잘못 읽힌 것. '아서 플렉은 더이상 조커의 배역이 아니다' 라는 의미.)
정도였기때문에...
음 다른 이야기들도 하고싶은데 글을 어떻게 전환하지
걍 대충쓸게요
-확실히 1편은 꼭 보고 가는게 낫다. 아주 많은 장면들 대놓고 1편의 오마주이기때문.
예를 들어, 1편에서 아서가 광대분장을 한 채 첫 살인들을 저지르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2편에서 아서가 동일한 장소에서 광대분장을 씻어 지우는 망상으로 재등장한다. (나는 해당 장면이 거울=현실인식의 요소인 거라고 해석함.)
-뭐 감독이 1편의 해석을 부정하기 위한 의도로 작품을 만든건 절대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영화가 '쇼와 배우와 관객' 이라는 요소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는 이상, 그리고 전작의 흥행에 대한 외부요소들 때문에 어느정도 메타픽션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맞다고 봄
-담배는 '아서가 인식하는 현실' 이라는 상징인 것으로 해석함
외부 인터뷰 씬에서, 상담사가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했으면서도 견디지 못한 아서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 순간이라든지, 2편에서부터는 아서가 조커인 상태에서도 담배를 피운다든지, 아서가 자신을 조커로 동치하기 시작했으며, 리와 그 망상을 공유한다=리가 철창 너머로 아서의 연기를 빨아들이는 장면이라든지...
-(특히 1편) 이 영화를 단순 '인셀' 이라고 표현하는건... 아서가 가진 모든 속성을 단순 남성이라는 정체성 하나로 치부한 채 작중에 등장하는 다른 모든 소수자적 맥락을 지워버리는것이고, 난 그거 진지하게 현실의 차별이라서 정말로 괴롭고 불편하다는 점을 말해둔다...
-"온 세상이 나의 무대" 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이보다 더 좋은 캐치가 나올 수 없는 최고의 문구인듯.
하지만 영화라는건 정말 좋은거야.........
조만간 보덜덜도 볼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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